MBTI만 믿고 직업 고르다 후회한 이야기 — 직업 적성 테스트의 쓸모와 한계
2022년 여름에 저는 당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기획자로 이직했어요. 이유가 좀 민망한데, MBTI 테스트 결과가 INTP로 나왔고 어느 블로그에 "INTP는 분석적 업무에 최적"이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그전엔 서비스 기획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 글을 읽고 마음을 데이터 분석가 쪽으로 바꿨습니다.
결과는 8개월 만에 다시 나왔어요. 적성에 안 맞아서가 아니라, 내가 생각한 데이터 분석이랑 실제 업무가 전혀 다른 거였습니다. 분석보다 엑셀 시트 맞추기, 팀 미팅, 타 부서 요청 쳐내기가 80%였어요. 테스트 결과로 그린 그림이랑 현실은 거의 상관이 없었던 거죠.
테스트가 놓치는 거
이 경험 이후로 저는 직업 유형 테스트에 대해 좀 냉정해졌어요. 테스트가 알려주는 건 결국 "이 유형은 이런 성향이 있더라"라는 통계적 경향입니다. 실제 업무에서 겪는 것들은 테스트가 안 재요.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요.
- 그 직무의 실제 하루 일과. 멋있어 보이는 타이틀이랑 실제 업무는 다릅니다.
- 조직 문화. 같은 직무라도 회사마다 분위기가 천지 차이예요.
- 함께 일하는 사람들. 일은 맞는데 사람이 안 맞으면 6개월도 못 버팁니다.
- 그 업계의 현재 시장 상황. 5년 전 유망했던 직종이 지금은 공급 과잉일 수도 있어요.
근데 이런 건 검사지에서 안 물어봅니다. "당신은 팀으로 일하는 걸 좋아하나요?"는 물어도 "당신이 가려는 그 회사의 팀 분위기가 어떨 거 같나요?"는 못 묻죠.
그나마 MBTI보다 나은 건 홀랜드 이론
MBTI만 알다가 직업상담사 하시는 지인이랑 얘기하면서 홀랜드 직업 흥미 이론(RIASEC)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1950년대에 존 홀랜드라는 심리학자가 만든 모델인데, 직업 쪽으로는 MBTI보다 훨씬 오래 쓰여왔고 학계 근거도 튼튼합니다. 여섯 가지 흥미 유형으로 사람을 봐요.
R — 실재형 (Realistic)
손으로 뭘 만들거나 고치는 걸 좋아해요. 추상적 개념보다 구체적 결과물을 선호합니다. 기계공학, 건축, 요리, 농업, 스포츠 트레이너 같은 쪽이 잘 맞아요.
I — 탐구형 (Investigative)
이론, 가설, 분석에 몰두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원리를 파고드는 게 즐거운 사람들이에요. 연구원, 데이터 분석가, 의사, 소프트웨어 개발자 쪽이 많습니다.
A — 예술형 (Artistic)
창작, 표현, 자유로운 작업 환경을 선호합니다. 규칙이 많은 조직에선 답답해 해요. 디자이너, 작가, 뮤지션, 광고 크리에이터 같은 직업이 어울립니다.
S — 사회형 (Social)
사람을 돕고, 가르치고, 치유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교사, 상담사, 간호사, HR 담당자, 사회복지사 같은 쪽이에요.
E — 진취형 (Enterprising)
설득하고, 이끌고, 성과를 만드는 걸 즐깁니다. 경쟁을 싫어하지 않아요. 영업, 마케팅, 창업, 정치인, 경영진 쪽이 많이 해당됩니다.
C — 관습형 (Conventional)
체계적이고 정돈된 업무를 선호해요. 규칙과 절차가 명확한 환경에서 능률이 오릅니다. 회계, 법무, 공무원, 물류 관리 같은 직종이 잘 맞아요.
홀랜드 이론이 좋은 점은 사람을 한 가지로 몰아넣지 않는다는 거예요. 보통 상위 3개 코드를 뽑아서 "당신은 IAS(탐구+예술+사회)형이네요"라는 식으로 조합을 말합니다. 저는 해보니까 ISA더라고요. 데이터 분석가가 맞다기보단 "분석적이면서도 창작을 하고 싶고 사람하고도 소통하고 싶다"라는 의미였던 거예요. 그래서 지금 1인 개발자로 콘텐츠랑 코드 둘 다 만지는 지금이 훨씬 맞습니다.
🎯 무료로 해볼 만한 곳. 고용노동부 워크넷에 홀랜드 기반 직업 선호도 검사가 무료로 제공됩니다. 국내 직업 DB랑 연결돼 있어서 결과에 따라 실제 직업 목록도 보여줘요. MBTI 직업 추천보다 훨씬 유용했습니다.
MBTI 유형별 직업 추천, 얼마나 믿나
블로그 이전 버전에는 16가지 유형별로 추천 직업을 쭉 나열해 뒀었어요. "INTJ는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INFP는 소설가..." 이런 식이요. 근데 다시 읽어보니 좀 공허하다 느껴졌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 같은 유형이어도 사람마다 세부 성향이 달라요. INTP가 열 명 있으면 한 명은 학자, 한 명은 개발자, 한 명은 뜻밖에 요리사가 됩니다. "INTP = 분석가"라고 퉁치는 건 너무 게으른 매칭이에요.
둘. 직업의 업무 내용이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10년 전 "마케터"랑 지금 "퍼포먼스 마케터"는 같은 직업이 아니에요. 데이터를 끼고 사는 지금의 마케터는 T가 유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굳이 큰 그림을 그리자면 이 정도 경향성은 실제로 있는 것 같아요.
- NT 계열 — 분석, 전략, 시스템 설계. 개발, 컨설팅, 연구, 기획 쪽이 많습니다.
- NF 계열 — 사람, 의미, 가치. 상담, 교육, 콘텐츠, 비영리 쪽에 몰리는 편이에요.
- SJ 계열 — 체계, 책임, 관리. 공직, 금융, 관리직, 의료 행정 쪽에 많습니다.
- SP 계열 — 행동, 현장, 즉각성. 영업, 현장직, 예술, 스포츠, 응급 대응 직종 쪽이 강해요.
이건 그냥 평균이고 개인차가 큽니다. 본인이 SJ인데 예술가가 되고 싶으면 되는 거예요. 테스트 결과가 진로를 좁혀서는 안 됩니다.
그럼 테스트는 어떻게 써야 하나
2년 전 실수 이후로 저는 테스트를 이런 식으로 써요.
- 결과를 출발점으로만 본다. "이 결과가 내 인생을 말해주는구나"가 아니라 "이 방향을 한번 알아보자"의 의미로만요.
- 추천 직업 중 마음이 끌리는 걸 골라 실제 종사자랑 대화해 본다. 블라인드 앱이나 링크드인 DM으로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시냐"고 물으면 의외로 많이 답해주세요.
- 가능하면 짧게라도 해본다. 사이드 프로젝트, 인턴, 부업 뭐든. 실제 해봐야 맞는지 아는데, 이걸 안 하고 이직부터 저지르면 저처럼 후회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성격 유형 테스트가 완전히 무의미한 건 아니에요. 자기 이해의 시작점으로는 좋아요. 근데 "이 결과가 진실이니까 나는 이 길로 가야 해"라는 자세만큼은 진짜 말리고 싶습니다. 제가 해봤거든요. 반년을 잃었어요.
진로 고민이 진짜 무거우면 테스트보단 실제 경험을 쌓고, 그래도 안 풀리면 유료라도 직업 상담 전문가를 찾아가는 걸 추천드려요. 공짜 테스트 열 개 해보는 것보다 전문가 한 시간이 훨씬 낫습니다.
이 주제로 더 얘기해보고 싶으시면 메일 주세요. 비슷한 경험 있는 분 얘기 듣는 걸 제가 좋아합니다.
본 콘텐츠는 성격 유형 이론을 직업 탐색에 재미있게 적용한 오락 목적의 콘텐츠이며, 전문적인 직업 상담이나 적성 검사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진로 결정 시에는 전문 상담 기관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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